어젯밤 어머니와 심한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저의 입장을 도무지 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언성을 높이는 일뿐이었습니다. 한동안 지방에 내려가 살면서 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다시 서울 집으로 들어오니 그 고통이 또다시 반복됩니다. 그런데 고통을 오랫동안 겪으면서 깨달아진 게 있어요.
제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이라는 공간은 사실 어머니의 왕국이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집에는 제가 지켜줘야 하는 생활 규칙이 있어요. 예를 들면, 화장실 문을 꼭 닫아놓아야 한다거나 어떤 물건은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요. 예전에는 집이 어머니의 왕국인 줄 몰랐었다 보니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저에게 어머니가 닦달하면 저는 늘 그것들에 반발심을 가지고 덤벼댔던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어요. 집은 어머니의 왕국이라는 것을요. 절대 군주인 어머니의 심기를 건들면 안 됩니다. 심기를 건드는 순간, 저는 집 밖으로 좌천되고 말아요.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집 밖으로 좌천되면 안 되겠죠? 이제부터는 어머니의 바람이 너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반발보다는 신하가 왕에게 상소를 올리듯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저의 의견을 전해야 해요. 예전에는 제가 그렇게 하지 않고 반발만 하다가 밤하늘의 별의 개수만큼 집 밖으로 좌천되기 일쑤였거든요.(어리석은 나란 사람.. 허허..)
어머니가 집을 자기만의 왕국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어요. 어머니는 고객 관리를 해야 하는 소위 '을'의 직업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어요. 고객이 끊기면 어머니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 명이라도 더 어머니의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늘 고개 숙이며 살아야 했어요. 그렇게 밖에서 하루 종일 전쟁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서만큼은 을이 아닌 갑으로써 대우받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아마도 본인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왕 대접은커녕 밥만 축내는 저항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얼마나 어머니에게는 눈엣가시였겠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어머니의 왕국에서 충실한 신하로서의 소명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집에 지분이 1%도 없는 제가 그동안 너무 오만방자했던 것 같거든요. 애석한 일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공짜는 없나 봅니다. 가족일지라도 말이죠. 그래도 어딘가에 내 몸 하나 편히 누일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할렵니다.
사실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를 이 글을 쓰게 이끌었습니다. 참 인생사 기막히네요.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럼 저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만난 가족에 관한 영상 한 편 띄우고, 글을 마치도록 할게요. 기억하세요. 가족관계도 인간관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v=uflTK8c4w0c&feature=emb_title
'오늘의 인사이트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발하듯 글쓰기 (2) | 2020.02.11 |
---|---|
몸에 대하여 (0) | 2020.02.08 |
중국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넘쳐나는 이유 (0) | 2020.02.05 |
새벽 4시, 부엉이들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0) | 2020.02.04 |
대한민국이 자존감 결핍 왕국이 된 이유?(※열받음 주의!) (1/2) (0) | 2020.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