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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자들의 속사정

by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 7. 21.

맘충과 학대자

우리는 아이를 무분별하게 키우는 자들을 일컬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든 범위를 아우르지는 못하지만 맘충, 학대자가 그것입니다. 맘충이라는 표현은 여성 차별적 발언의 의미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국 사회가 유독 여성에게 육아를 독점시켜왔던 이데올로기가 생산한 우리에게 단지 익숙한 단어일 뿐입니다. 제기랄 보수파들..! 아무튼 이딴 걸 생각하고 있노라면 한국의 체게바라가 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잘못된 명칭임은 분명합니다. 글을 이어가서, 아이를 키우는 자들이 맘충과 학대자로 부득이하게 불리는 이유 또한 분명한데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의 행동을 제재하지 않고 방임하는 자, 아이의 훈육을 위해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자, 폭력적 언사로 정신적 피해를 끼치는 자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표면적으로만 바라본다면 생기는 오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자들의 겉 행위만을 보고 혐오의 시선을 띄우기만 했지 그 자들의 이면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들이 곧 우리의 미래, 운명을 비추고 있는 거울이라는 것을 간과한 채 말이죠. 제가 지금부터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

겉모습으로 농락하기. 육아 일기로 써 내려간 폭군 일기

​천사 같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무장한 그 녀석은 아이를 키우는 자들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합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면 30분도 채 되지 않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녀석이 만든 무한궤도에 아이를 키우는 자들은 속절없이 빨려 들어갑니다. 반복되는 상황에 아이를 키우는 자들은 이내 인내심을 잃고 비이성적인 자들에게 녀석을 맡깁니다. 또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녀석은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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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자들의 속사정

남들이 보기에는 천사 같기만 한 녀석이 그 녀석을 키우는 자들이 바라보기에는 썩 달갑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신이시여! 내게 어찌 이런 고난을 주셨나이까! 다른 이에게는 천사처럼 보이면서 끼니 때마다 식사를 대접하고, 이야기 꾼이 되어주고, 24시간 개인 비서가 되어주는 저에게는 왜 이 녀석이 천사는커녕 원수로 느껴진답니까! 하는 한숨 섞인 자조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바쁩니다.

나는 맘충 따위가 되고 싶지 않은데 또한 그러한 시선조차도 받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이 녀석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맘충의 바이브를 내뿜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자들이 아닌 조금 유별나고 특별한 그 녀석을 키우는 자들은 결코 맘충이 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들을 오랫동안 천천히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 녀석을 키우는 자들은 그 녀석의 시간 속에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있었습니다.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희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물론 모르겠지요..) 역시나 제멋대로 하기 바쁩니다. 두 얼굴의 그 녀석을 감내하면서 그 녀석을 키우는 자들은 점점 소진되고, 앙상해집니다. 녀석을 처음 키우기 시작할 때,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지칠 때로 지친 그들은 맘충과 학대자가 되더라도 그 녀석의 울타리에서 그만 탈출하고 싶어집니다. 상상과 현실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느끼는 아이를 키우는 자들입니다.

속사정 좀 더 들여다보기

아이를 키우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며,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현실과 상상은 정말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섣불리 그들을 판단하고, 진단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 상상 속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이 온다면 현실의 무게 앞에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나의 이 녀석은 그때 보았던 그 녀석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나를 압박해옵니다. 그런 현실을 그대로 감당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도 유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안고 가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아이를 키우는 자들과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자들은 결국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훨씬 더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수용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든 안 키우든 서로의 같은 속 사정을 들여다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열린 자세일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교집합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