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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왕국

by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 2. 7.

어젯밤 어머니와 심한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저의 입장을 도무지 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언성을 높이는 일뿐이었습니다. 한동안 지방에 내려가 살면서 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다시 서울 집으로 들어오니 그 고통이 또다시 반복됩니다. 그런데 고통을 오랫동안 겪으면서 깨달아진 게 있어요.

제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이라는 공간은 사실 어머니의 왕국이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집에는 제가 지켜줘야 하는 생활 규칙이 있어요. 예를 들면, 화장실 문을 꼭 닫아놓아야 한다거나 어떤 물건은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요. 예전에는 집이 어머니의 왕국인 줄 몰랐었다 보니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저에게 어머니가 닦달하면 저는 늘 그것들에 반발심을 가지고 덤벼댔던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어요. 집은 어머니의 왕국이라는 것을요. 절대 군주인 어머니의 심기를 건들면 안 됩니다. 심기를 건드는 순간, 저는 집 밖으로 좌천되고 말아요.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집 밖으로 좌천되면 안 되겠죠? 이제부터는 어머니의 바람이 너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반발보다는 신하가 왕에게 상소를 올리듯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저의 의견을 전해야 해요. 예전에는 제가 그렇게 하지 않고 반발만 하다가 밤하늘의 별의 개수만큼 집 밖으로 좌천되기 일쑤였거든요.(어리석은 나란 사람.. 허허..)

​어머니가 집을 자기만의 왕국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어요. 어머니는 고객 관리를 해야 하는 소위 '을'의 직업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어요. 고객이 끊기면 어머니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 명이라도 더 어머니의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늘 고개 숙이며 살아야 했어요. 그렇게 밖에서 하루 종일 전쟁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서만큼은 을이 아닌 갑으로써 대우받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아마도 본인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왕 대접은커녕 밥만 축내는 저항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얼마나 어머니에게는 눈엣가시였겠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어머니의 왕국에서 충실한 신하로서의 소명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집에 지분이 1%도 없는 제가 그동안 너무 오만방자했던 것 같거든요. 애석한 일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공짜는 없나 봅니다. 가족일지라도 말이죠. 그래도 어딘가에 내 몸 하나 편히 누일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할렵니다.

사실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를 이 글을 쓰게 이끌었습니다. 참 인생사 기막히네요.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럼 저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만난 가족에 관한 영상 한 편 띄우고, 글을 마치도록 할게요. 기억하세요. 가족관계도 인간관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v=uflTK8c4w0c&feature=emb_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