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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의 기준점 (4/12)

by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 4. 15.

 

어제는 강바람을 맞으며 하천 옆길을 따라 걸었어요. 날씨가 좋아서인지 산책로로 반려견을 데리고 나오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마주 오는 반려견들이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저는 연신 "와! 너무 귀엽게 생겼다."하고 감탄을 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저 강아지를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 강아지가 귀엽게 생긴 것이 맞을까?' 그리고 귀여움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의문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다가 내린 결론은 '기준은 없다.'였습니다. 외형에 대한 미의 기준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이며 그러므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기준은 없지만 사회, 문화적인 틀을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는 일반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제가 기준은 없다고 떠든다 한들, 저도 인간인 만큼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기인합니다. 자손 번식에 앞서 반려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생존이 우선시 되었기 때문에 빠른 판별과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반려자를 고르기 위해서는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야 했을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목구비가 균형 잡힌 얼굴이 재빨리 알아채기 쉬웠을 것이고, 이것이 현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근본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대마다 미의 기준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균형감이 있는 인상을 선호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의 기준을 여성을 중심으로 언급해서 불편하게 바라보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외적인 아름다움은 태초부터 여성을 중심으로 한 문화에서 출발하였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에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확실히 인간적인 시선에서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면 남성보다는 역시 여성이 훨씬 아름답다고 느낍니다.(저도 건강한 남자라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진중한 얘기를 드리자면, 이 미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혹자는 진정한 미의 기준은 내면의 아름다움이다.라고 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내면의 아름다움은 굉장히,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형의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사실 내면의 아름다움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아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면보다는 외형의 아름다움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많기도 합니다. 이게 현실이죠. 그래서 우리나라가 성형의 왕국이 되어 가고 있나 봅니다.(※성형 한 분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에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함입니다.)

 


 

 

 

소녀시대 '효연'이 TV 프로그램에서 미의 기준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을 하였는데요. 한 번씩 영상을 보시고 글을 다시 읽어내려 가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효연은 자신의 발언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전의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고도 고백을 하죠. 저도 동영상을 보고 얘기를 들으니 가슴 한쪽이 먹먹하더라고요.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들이 미에 대한 부담을 적지 않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네. 솔직히 얼굴이 예쁘면 저도 남자인지라 호감이 어느 정도는 갑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취업 시 채용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이죠. 예외를 둔다면 배우나 가수 같은 엔터테이너 산업에서는 비율 좋은 얼굴들이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고 생각을 하는 바입니다. 각자 타고난 인상을 가지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업의 취업 시에 인상 좋은 사람들을 우선 섭외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회에 책임이 있어요. 왜냐고요? 일자리가 부족한 겁니다. 고급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요. 대기업의 한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몇 천 명이 경쟁을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정말 정신 나간 사회에요. 이쯤에 혹자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눈을 낮추면 되지. 눈을 낮추면 일자리는 많아요.' 그래요. 만약에 눈을 낮춰서 입사했다고 칩시다. 근데요. 왜들 그렇게 사회에서는 대기업 고액 연봉자, 정치인,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을 아직도 추앙하고 떠받드는 겁니까? 이런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이 왠지 모르게 하대당하는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요?

 

예전에 직장 상사와의 술자리에서 들었던 얘기입니다. 직장 상사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창피함을 느낀다고 고백하더라고요. 부모님이 동창을 만나면 내 자식의 직업을 멋지게 말하지 못한다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직업에 귀천을 둡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미의 기준을 과감히 따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입니다. 외면이 부족하면 내면을 채우면 된다고요? 내면의 아름다움을 채우기 전에 사회로부터 상처받아 병들게 된다면 정상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내면을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채우면 그것이 화면 밖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사람이 기품이 있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내면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려는 노력은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불합리함이 고착화된 우리나라 사회의 행태를 두고 우리가 왈가왈부해봤자 개인의 힘만 빠집니다. 어찌 됐건,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정해진 미의 기준은 일단 인정하고 보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러면서 '효연'씨의 말처럼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거울 앞에 서보세요. 처음에는 부족하고 못난 부분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두고 계속 봐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못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면서 '나름 귀여운데?'라고 나름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보세요! 그러면서 자신의 예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아보는 겁니다. 예쁜 부분이 하나도 없다면 어쩌냐고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요. 그러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각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돌아볼 때인 것입니다.

몰랐죠?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며 유일하게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