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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by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 3. 2.


햇살이 밝게 내리쬐던 어느 여름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늘 그렇듯 TV 앞에 앉았다. 화면 속에 한 소녀가 피아노를 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만화, 드라마 프로그램 이외의 다른 채널은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한 다큐멘터리에 시선이 머문 채로 2시간 동안 망부석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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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고운 흙더미 위로 언뜻 비치는 내 음악의 씨앗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연히 다가왔다. 이것이 나의 삶을 좌지우지할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깊게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화면 속 소녀의 노래가 그냥 좋았다. 소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잠을 자는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다음날과 그 다음날에도 세상의 소리는 온통 소녀의 목소리로 들어찼다. 나는 매주 내 집 안방에서 소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녀를 향한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멀어져 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 하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도 저 소녀처럼 살고 싶다.'라는 이질적인 내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뜨거운 감동이 가슴 깊숙한 곳부터 올라와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하긴 하지만 그날의 떨림은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것 같다. 그립지만 잡을 수 없기에 더 애틋한 떨림이 아닐까. 매일이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잠자는 시간마저 음악의 고원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설렘과 강렬한 떨림은 사라진지 오래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있던 나만의 고민이다. 떨리지 않으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떨릴 수 있도록 나를 감상적 교차점으로 끌고 가야 하는가.

얼마 전, 예비군에서 곡을 쓰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산 위에서 경계 근무를 하는 시간 동안 동지끼리 대화를 나누니 금방 친해지더라. 그러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 '창작물이라면 일단 세상 밖으로 내놓는 게 중요해. 내 감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세상에 보여주지 않는다면 안 한 것만 못해.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게 그거야.'

그래서 이제 자유로운 망아지처럼 들판에 뛰어놀도록 나의 창작물들을 내놓을까 한다. 소녀를 만났을 때의 나의 감상적인 시선이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소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미성숙했다. 이제야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창작자로서 표현할 의무를 마다하지 않겠다. 그리고 언젠가 소녀를 만난다면 나의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